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미드웨이 해전 (문단 편집) === 일본군이 미드웨이 해전에서 승리했다면? === 역사학자 시어도어 쿡 주니어 교수는 대체역사 에세이집인 '[[만약에]]'에서 '일본군이 미드웨이 해전에서 승리했었다면'을 주제로 아래와 같이 가정하였는데, 그 내용이란 게 [[피지]], [[사모아]], [[뉴기니]]와 [[하와이]]를 비롯하여 남태평양 일대를 장악하고 호주와 미군의 보급로를 차단하며 인도와 실론을 위협했을 거라는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동시에 태평양 전쟁이 교착화되어 유럽 전쟁도 보다 더 지속되었을 것이라고. 그러나 당시 일본군을 생각하면 하와이는 고사하고 위에서 말했듯이 미드웨이섬 하나 점령하는 것도 성공했을지 의심스럽고, 툴라기를 점령했던 5월의 시점에 FS작전의 목표이던 피지에는 벌써 1개사단(미 육군 제37보병사단)이 배치되어 있었고 역시 목표지점이던 사모아에도 7해병연대를 포함해서 15,000명에 달하는 병력이 있었으며 뉴헤브리디스의 에파테에 5,800명, 그리고 역시 목표지점이자 미군의 사령부이자 중요항구이던 뉴칼레도니아의 누메아에는 아메리칼 사단을 주축으로 하는 22,000명이 배치되어 있고 호주 본토에도 미군 2개 사단(32, 41보병사단)이 있기에 보급로를 지키기 위해서 1개 사단 정도는 충분히 동원할수 있고 거기에 6월 14일에 뉴질랜드에 도착한 1해병사단까지 방어에 돌릴수 있으므로[* 태평양 전쟁 개전 이후, 전쟁 초기에 미군 수뇌부는 오스트레일리아를 영국 본토처럼 연합군 반격의 핵심 대기지로 인식해서 미국 ~ 호주간의 해상 수송로 및 병참선의 방어 및 유지를 최우선 순위로 설정하여 가용가능한 부대들을 경로 상에 포진한 주요 섬 지역에 수비대로 배치시켰다.] 사실상 보급선 차단이라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또한 일본군은 실론 점령에 4개 사단 이상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중국을 주 전장으로 삼는 일본 육군은 실론 점령에 사단급 병력을 내놓을 의사가 전혀 없었다. [[무타구치 렌야]]가 [[임팔 작전]]을 성공시키고 찬드라 보스를 활용하는 시점까지 가면 실론을 생각하겠지만 당시에는 이중 그 어느 것도 상상조차 한 사람이 없다. 연합함대 또한 전쟁연습을 해보았지만 결과가 너무 실망스러워서 실론 점령을 포기하였다. 결론적으로 일본 제국이 설령 미드웨이에서 승리한다고 가정해도 당시 제반 여건을 고려할 때 일본이 얻을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으며 되려 보급선을 늘리는 자충수를 두는 행위에 불과했을 것이라는 평이 우세하다. 물론 같은 승리여도 전투 결과가 어디까지 벌어졌는가에 따라서 미국에게 지대한 타격을 줄 수는 있었을 것이다. 애초에 미군이 정보탐지로 공격목표가 미드웨이라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거나, 알아냈음에도 삽질 및 혼선으로 미드웨이에 별다른 방비를 안했거나, 모든 상황이 실제 역사와 동일했음에도 운에 운을 거듭해서 만약 미국의 손실이 일본군 정도로 처참했더라면 태평양 전쟁의 양상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었다. 특히, 일본군이 이 해전과 [[필리핀 해 해전]] 등으로 각각 숙련 항공정비병과 숙련 파일럿들을 대거 잃어버림에 따라 항공전력이 급감한 것을 떠올려보면, 인적 자원은 잃지 말아야 할 중대한 요소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미드웨이 해전에 참여한 미국 태평양 전력 또한 서론에서 언급한 니미츠 제독의 생각대로 잃지 말아야 할 정예였고, 만약 이들을 잃었다면 미군도 생각 이상으로 곤경에 처할 수 있었다. 물적 자원과 달리 인적 자원은 쉽게 복구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실제 일본군이 입었던 손실에 준하는 피해를 미군이 입었다면, 태평양 전쟁은 훨씬 더 지리멸렬한 소모전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소모전이 계속 이어진다면 자원이 풍부한 미국이 결국 이겼을 것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알만하지만, 문제는 전쟁은 이런식으로 지속할 수 없다는 것. 결국 자국의 민심과 정치적인 영향으로 소모전이 지속되면 양국은 적당히 합의점을 보고 전쟁을 끝내려 할 것이기에 일본은 패망이나 제국의 해체까진 막았을 수도 있다. 재미있게도 이후 미국은 이런 일을 실제로 겪게 되는데 그것이 [[베트남 전쟁]].[* 물론 태평양 전쟁과 베트남 전쟁은 전쟁 개시의 명분 측면에서 급이 다르기에 적절하지 않을 수 있으나, 아무리 명분이 좋아도 계속해서 국민들이 죽어나가고 돈만 펑펑 샌다면 전쟁을 지속할 이유와 의지가 점점 사라지게 된다는 면은 생각해볼만 하다.][* 다만, 미드웨이 해전의 패전으로 인하여 미국이 일본과 타협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평화를 유지하는 기만 후에 비겁한 기습을 당했다고 여겼고 이후에 불어닥친 애국주의와 복수심은 정, 재계에서도 결코 무시할 수 없었다. 또한 물주였던 미국의 뒤통수를 거하게 후려친 일본에게 미국이 전쟁 내내 전혀 협상할 의지를 보이지 않았던 것 등으로 일본의 협상 시도를 미국이 받아들일 여지가 없음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사실 이와 같은 총력전의 양상은 미-일뿐만 아니라 2차 대전 내내 전 세계에서 보이는데 독일은 총통이 죽고 연합국에 항복하기 전까지는 베를린 전역이 전쟁터가 되어 동물원의 동물들을 도축할 지경까지도 버텼고, 일본은 나무뿌리 기름을 비행기에 넣고 전 국민의 무장화를 시도하는 등 핵을 두 방 맞기 전까지는 협상 테이블에 나올 생각도 없었다. 심지어 본토가 완전히 유린당한 프랑스, 네덜란드, 폴란드 등도 동맹국으로 정부만 몸을 빼거나 식민지에 망명정부를 만들어 저항했다. 전쟁에 대한 인식이 지금과 매우 다른 시절임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